한 달도 더 지나서야 쓰는 공연 후기. 간만에 나간 외출에 걸맞는 최고의 컨텐츠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원래는 앨리스 사라 오트와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협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으로 인하여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지휘 및 독주로 바뀐 프로그램이다. 라벨도 좋고 베토벤도 좋으니까 상관없지만 공연 프로그램 변경 때문인지 좌석이 눈에 띄게 비어 있던 것은 조금 슬프다.

점심으로 먹은 카이센동. 이거 먹고 고디바 베이커리 가서 도넛도 먹고... 안마의자 좀 앉아있다가 예술의전당으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려서 예당에서 여유 부릴 만한 정도는 안 되었다. 조금 일찍 가서 상설전시랑 카페 같은 데도 가면 좋을 걸. 저날 꽤 더웠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날씨가 정말 좋아 보인다.


깜빡하고 프로그램북을 안 찍었군. 이미 앨리스 사라 오트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인터뷰로 제작된 프로그램북이어서 수정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임시 페이지 같은 걸 끼워 줬다.
앨리스 사라 오트의 쾌차를 바라며 입장

1부는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다.
사실 베토벤이나 브람스보다 기대했던? 또는 궁금했던 무소륵스키이다. 다들 전람회의 그림 말고는 딱히 아는 게 없으리라.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무소륵스키 특유의 투박하고 원시적인 선율에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절묘하게 덧입혀져 있다. 해가 지고 민둥산에서 온갖 마녀와 괴물들이 축제를 벌이는 기괴한 정경을 그리는 작품으로, 무소륵스키만큼 이러한 장면을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곡가가 있을까. 그의 음악 세계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무소륵스키의 어법이 제자리를 잘 찾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베토벤. 김선욱은 피아노를 연주해야 한다. 김선욱은 베토벤을 연주해야 한다. 2부의 그 장대한 교향곡을 듣고도 남은 것은 베토벤이었다. 십 년을 넘게 가져온 레퍼토리답게 능숙하고 자연스럽고, 그저 베토벤뿐이었다. 다만 독주에 지휘까지 맡아 힘들어보이기는 하더라... 차라리 지휘자를 따로 두고 협연을 했다면 어땠을까. 피아노 앵콜로 브람스의 인터메조 118-2를 연주했는데 확실히 이런 계열(베토벤-바흐-브람스 등등...)이 잘 어울리는 연주자답다.
2부는 브람스 교향곡 2번.
브람스는 어렵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연주뿐만이 아니고 듣기에도. 잠깐이라도 놓치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교향곡 2번은 동 작곡가의 1번 교향곡이나 여타 교향곡으로 유명한 작곡가(1부의 베토벤!)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고 특유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있어 더욱 그러하다. 연주 측면에서는, 4악장에서 16분음표가 조금씩 밀리는 것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딱히 모난 데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붕 뜬 곡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면 그게 좋은 연주가 아닐까 싶다.

공연 다 끝나고 올라가는데 뒷자리 할머니들이 싸우던데 재밌었다. 뭘 자꾸 앞에서 그렇게 부시럭거리냐느니, 참 잘났다느니, 앞에서 조는 거 다 봤다느니...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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