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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에 다녀온 후기

by 우울한체리 2026. 7. 1.

 육군 병사인 내가 정기외출 때 뭘 할지 고민하던 중 같은 달 초에 김선욱의 베토벤과 브람스를 다녀온 게 너무 만족스러워서 예당을 한 번 더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공연일로부터 일주일 전 정도. 선우예권 리사이틀이라니, 자리가 있을까 했는데 취소표인지 띄엄띄엄 자리가 있더라. 그래도 A석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찌저찌 3층의 1열을 잡았다. 

 

 오전에는 신촌에서 피아노 연습실을 빌려서 조금 놀다가 점심때 즈음 서초로 출발. 공연은 오후 5시 시작이므로 테라로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식사로 마라잡탕밥을 먹었는데 마라와 케이크의 완벽한 상호보완. 드립커피도 좋다. 커피 한 잔에 2만원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다음에는 꼭 게이샤를 마시겠다. 

 4시쯤 음악당으로 가서 표 받고, 프로그램북도 받고, 포토존이랑 현수막 구경 좀 하다가 적당히 들어갔다. 선우예권 친필 싸인 헨레 악보도 팔던데 리스트 곡은 하나같이 칠 엄두도 안 나고 비싸기도 하고 그냥 신포도 해버렸다. 슈베르트는... 슈베르트를 연습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왜일까 참.

 

 이 정도의 자리. 옆에 있던 사람이 일행 때문에 자리를 바꿔달래서 한 칸 오른쪽으로 옮겼다. 

 

 1부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이었다. 슈베르트나 차이콥스키처럼 비(非)-피아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을 듣다 보면,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피아노를 손에 익힌 작곡가들의 음악과는 다른 위화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아노를 이렇게도 다룰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준다. 특히 1악장에서 그런 인상을 많이 받았다. 2악장은 잔잔한 F♯ minor의 분위기 때문인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이 자꾸 떠올랐다. 반면 3·4악장에 들어서는 비로소 본격적인 피아노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해졌고, 고전과 낭만의 과도기에 위치한 작품다운 절제와 적절한 감정선이 인상적이었다.

 

 듣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1부였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제대로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내게는 브람스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상을 남겼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음악. 2부의 리스트를 듣고 나면 더욱 기억에서 흐려질 것 같아 귀를 기울이려 애썼지만, 결국 그 인상은 리스트의 거대한 아르페지오와 옥타브에 가려지고 말았다.

 

 2부는 리스트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헝가리안 랩소디 2번, 메피스토 왈츠 1번으로 이어졌다. 내 오른쪽에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과 그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아들 쪽은 클래식 공연이 처음인 듯했다.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가 끝나자마자 "이야, 잘 친다." 하고 감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이 곡은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원초적인 즐거움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헝가리안 랩소디 2번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귀를 붙잡는 선명한 멜로디와 dancy함이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메피스토 왈츠 네 곡은 리스트 피아노 작품의 정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선우예권의 연주 역시 악마적이고 과감한 터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음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약간의 거침이나 뭉개짐을 감수하더라도 음악을 만들어 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 이 곡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4곡에 달하는, 거의 3부에 가까운 앵콜. 결혼 행진곡 빼고는 올해 발매한 선우예권의 리스트 음반에 수록된 곡들이다. 첫 곡은 난생처음 들어봤는데, 같이 연주한 콘솔레이션 3번과 같은 리스트적 서정성이 묻어나는 곡이었다. 이후 헌정(프로포즈)과 호로비츠 편곡 결혼행진곡(결혼)으로 이어지는, 의도한 부분일까 싶은 흐름이었다. 결혼행진곡은 중간 부분을 생략했는데, 이 쪽이 훨씬 좋은 것 같다. 

 

 나오는 길에 예정 프로그램을 둘러보는데 이전에 천안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의 바순 협주곡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그때 독주자로 나온 분이 있길래 찍었다. 바순 협주곡도 생소했는데, 바순 리사이틀은 뭘 연주하는 걸까. 아쉽게도 오후 7시 반에 시작하는 공연은 갈 수가 없다. 9시 반까지 복귀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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